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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석사 기행(1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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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조병욱
- 2016-11-18
- 조회수 262
부석사(浮石寺)
깊어가는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날 산사를 찾았다.
영주 부석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지 형 가람이다. 산 구릉에 사찰이 건립되었는데도 산 지형을 거스르지 않고, 산과 잘 어울려 서 있다. 그래서 부석사가 있는 봉황산이 더 멋있어 보인다. 이 사찰을 창건한 의상스님의 화엄사상 처럼 ’한 티끌 속에 시방세계가 담겨 있고, 온갖 우주도 한 티끌 속에 담겨 있듯 영주 소백산 국립공원 봉황산 기슭에는 불교 화엄종의 근본도량인 부석사가 있다.
이 절은 신라 문무왕16년(676)에 의상대사 (625-702)가 창건했는데
의상대사는 당나라에 건너가 화엄종을 연구하고 돌아 와 이 땅에 화엄종을 열었고
양양 낙산사 . 의성 고운사 등 10여개의 사찰을 건립한 불교계의 큰 스님이다.
부석사에는
국보 5점 (무량수전. 석당. 조사당. 소조아미타여래상. 조사당벽화)
보물 4점 (자인당 석조비로자나불상. 삼층석탑. 당간지주. 고려각판)이 있다.
무량수전(無量壽殿; 국보 제18호)
무량수전은 정면 5칸 .측면 3칸에 팔작지붕(지붕 위에 까치박공 < 용마루 양 끝에 붙이는 사자나 귀면형태의 기와 >이 달린 삼각형의 벽이 있는 지붕) 이고
추녀 네 기둥이 8각 活柱(목재 등을 받치거나 버티는데 쓰는 굽은 기둥)로 받쳐주고 있는데
기둥은 알맞은 배흘림 (궁궐이나 사찰 기둥 중간부분이 더 굵고 위 아래로 갈수록 직경이 작아지는 기법)으로 안정감을 주면서 착시현상을 보완하는 최고급 목조건축법으로 만들었다..
간결한 두공(枓拱; 공공청사나 사찰에서 길게 짠 화반 대신에 쓰는 나무)과 모서리기둥에 보이는 귀솟음수법(건물 전체의 균형을 잡기위해 기둥의 높이를 각각 조절하는 건축기법)은
자잘한 정자살과 분합문(分閤門; 마루나 방 앞에 설치하여 접어 열 수 있게 만든 큰 문) 크기는 24.3cm×45cm 이다. 시원스런 포벽(包壁 : 다포형식(多包形式)에서 기둥 상부 이외에 기둥 사이에도 공포 (栱包; 전통 목조건축에서 처마 끝의 하중을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 같은 데 짜 맞추어 댄 나무 부재로, 건물의 가장 중요한 의장(意匠) 과 장식의 기능도 겸하는 것)를 배열한 건축양식을 말하며 건물의 공포와 공포 사이에 조성한 벽) 그 위에 가늘고 긴 기왓골이 운치를 더 한다.
이 불전은 1916년 해체수리 때 발견된 묵서명(墨書銘; 도자기 . 항아리 등 밑에 묵으로 쓴 글씨)에 고려 우왕 2년(1376)에 중창한 것으로 봉정사 극락전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로서 사찰 건축구조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.
소조아미타여래좌상(塑造阿彌陀如來坐像; 국보 제45호)
이 불상은 현존하는 소조불(塑造佛; 찰흙 석고 등으로 만든 불상)로는 가장 크고 또 아름답다. 무량수전에는 아미타여래가 주존(主尊)으로 봉안되어 있는데, 이 불상이 모셔져 있는 전각이 무량수전이기에 불상도 아미타불로 추정하고 있다. 이 불상의 특징은 무량수전 주불이 남향인데 동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. 이 불상은 석가여래의 극적인 성도 순간을 상징하는 항마촉지인 (降魔觸地印;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두 번째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모양인데. 이는 ‘고타마 싯다르타’(BC563-483)가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하는 순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)의 수인(手印; 모든 불·보살의 서원을 나타내는 손의 모양)을 맺고 있고, 머리는 매우 울퉁불퉁하다. 머리와 육계(불두에 틀어 올린 머리)의 경계 부분 중앙에 원형의 장식이 있다.
풍만한 얼굴에 눈꼬리가 길게 치켜 올라가고 입은 꼭 다물어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으며, 두 귀도 활처럼 길게 휘었다. 떡 벌어진 어깨와 당당한 결과부좌(結跏趺坐; 오른쪽 발을 왼쪽 허벅다리 위에, 왼쪽 발을 오른쪽 허벅다리 위에 놓고 앉는 모양)의 자세에는 부처의 위엄이 서려 있고,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있는 대의에는 도드라진 옷 주름을 일률적으로 새겼으나 얇게 몸에 밀착되어 몸의 굴곡이 완연하면서도 유연성이 뛰어난 불상이다.
석등(石燈; 국보 제 17호)
화강암으로 통일신라 때 만든 팔각석등 인데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걸작으로
부처의 광명을 상징하기에 光明燈 이라하기도 한다.
높이 2.97미터, 8각을 기본형으로 사각형 지복석 [地覆石 : 땅바닥에 까는 돌]위에
사각형 地臺石을 얹었고 불을 켜는 화사석 역시 8각형으로 4면에 화창을
남은 4면은 연꽃무늬대위에 보살상이 양각되어 비례의 조화가 아름다운 석등이다.
조사당(祖師堂; 국보 제19호)
의상대사의 초상화를 모시고 있는 건물로 정면 3칸, 측면1 칸의 맞배지붕( 건물의 모서리에 추녀가 없고 용마루까지 측면 벽이 삼각형으로 된 지붕) 이다.
고려 우왕 3년 (1377)에 건축된 것으로 조선 성종 24년에 중창 했다.
이 조사당에는 ‘선비화’ 이야기가 유명하다.
선비화란 의상대사가 평소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땅에 꽂아서 자라난 ‘골단초’ 로
의상대사는 이 나무의 싱싱함과 시듬을 보고 자신의 생사를 알라고 했다한다
참배객들의 손길을 많이 타서 지금은 창살로 막아 놓아 씁쓸 음 했지만
그래도 싱싱하게 자라주는 것에 감사하고 신기할 따름이다.